INSIGHT · Insight · 2026.08.02
AI 기술 제국들에 지배 당하고 말 것인가? - 기술공화국을 읽고
지난 4월, 시가총액 3,000억 달러 소프트웨어 회사가 X에 1,000단어짜리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48시간 만에 3,200만 명이 읽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KAIST EMBA 독서클럽에서 책 『기술공화국 선언』의 발제자가 되어 만났고, 우리 회사 CTNS가 가야 할 길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게시물이 세상을 흔들었다
팔란티어가 올린 22개 조항은 알렉스 카프의 책 『기술공화국 선언』(지식노마드, 2025)의 압축본입니다. 요지는 도발적입니다. 실리콘밸리는 국가 덕에 성장했으니 국방 참여는 선택이 아닌 의무이고, 이번 세기의 하드파워는 소프트웨어 위에 세워지며, 핵 억지의 시대가 끝난 자리를 AI 억지가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KAIST EMBA 독서모임에서 책 『기술공화국 선언』의 발제를 맡았습니다. 그날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AI 기술 속국이 되지 않을 우리의 돌파구는 무엇인가?"
각본을 쓴 사람과 철학을 입힌 사람
이 책을 이해하려면 두 인물을 봐야 합니다.
피터 틸은 일찍이 "나는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다수결이 창조적 소수를 억누른다는 문제의식, 민주주의와 서방의 위기 의식 — 팔란티어의 각본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알렉스 카프는 그 각본에 철학을 입혔습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본산에서 사회이론 박사를 받은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감시·국방 기업을 이끕니다. 그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서구가 스스로를 지키려면, 실리콘밸리는 소비자 앱을 넘어 다시 국가·국방과 손잡아야 한다." 우리가 토론 하고 있을 시간에 적들은 고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의 요지 — 진단에서 처방으로 가는 네 개의 계단
이 책은 4부 1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발제를 준비하며 저는 이 책을 "진단에서 처방으로 가는 네 개의 계단"으로 읽었습니다.
PART I 소프트웨어 시대 — 실리콘밸리는 국가를 떠났다. 초기 실리콘밸리는 국가적 과제(방위·우주·통신)를 풀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한 세대의 최고 인재가 사진 공유 앱과 광고 알고리즘에 몰려 있습니다("앱의 폭정"). 냉전에서 이겼지만 소비자 시장에서 이기고 있다는 착오 속에 중국이 부상했고, 핵 억지의 시대가 저물며 AI 억지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PART II 미국 정신의 공동화 — 기술은 남았는데 신념이 사라졌다. 기술 엘리트는 만들 줄은 알지만 목적은 묻지 않는 '기술 불가지론자'가 되었고, 국가·공동체와의 끈이 끊긴 풍선처럼 부유합니다. 그 사이 민주주의는 오작동 중이라는 것이 카프의 가장 아픈 지적입니다.
PART III 엔지니어링 사고방식 — 이론이 아니라 관찰로 만든다. 중앙통제 없는 벌떼 협업, 흩어진 데이터를 현실 업무와 연결하는 온톨로지와 고객 현장에 상주하는 전진배치 엔지니어(FDE) — 팔란티어 조직론의 원형이며, 이 기술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실전 검증됐습니다.
PART IV 기술 공화국 재건 — 기술 엘리트여, 국가로 돌아오라. 하드파워(기술)와 소프트빌리프(신념)의 두 기둥으로 실리콘밸리와 국가가 재결합해야 한다는 처방입니다. 이 책이 사실상 현 미국 정권의 교과서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책은 도발이었고, 판단은 우리 몫이었다
토론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갔습니다.
책의 편에 서면 —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하려면 도덕적 호소 그 이상, 하드파워가 필요합니다. 핵의 억지력 시대 다음 하드파워는 AI 억지력 입니다. 국가와 AI 기술의 재결합은 2차 대전기 맨해튼 프로젝트의 부활입니다. 경쟁자들의 위협에 좌고우면 할 시간 없이 이제 다시 기술 엘리트들이 국가와 군대를 위해 헌신 해야 합니다.
비판의 편에 서면 — 이 책과 22항 선언문은 민주주의의 핵심 기둥을 공격합니다. "문화에 우열이 있다"는 21항은 기술철학자로부터 "테크노파시즘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영국 하원의원으로부터 "슈퍼빌런의 독백"이라는 조롱을 받았습니다. 군대를 보유하고 외교를 대행했던 동인도회사의 비유까지 소환됩니다.
저는 양쪽 모두에 근거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동의하든 반대하든,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사상은 이미 세상과 시장의 규칙을 바꾸고 있습니다.
태평양 건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
미국의 특수목적 배터리팩 시장(의료·방산·드론)을 분석하면서 저는 카프의 주장이 배터리 업계에서도 실제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지금 이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들이 파는 것은 최고의 셀도, 최저가도 아닙니다. "비 FEOC(Foreign Entity of Concern, IRA법), NDAA(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국방수권법) 준수 즉 우려국 부품이 없고, 전 부품의 이력이 추적된다"는 증명입니다. 규제 준수 그 자체가 영업의 필요 조건이 되고, 이를 증명한 자체 브랜드 구축을 위해 투자로 회계 손실을 감수한 회사가 사상 최대의 수주 잔고로 보상받고 있습니다.
기술이 전략 자산이 된 시장의 규칙은 분명합니다. 규제가 시장에 선을 긋고, 신뢰성 증명이 모든 것을 압도 합니다.
한국: 지배당한다 vs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토론의 마지막 화두는 우리(한국)였습니다. 위기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 제조업의 노하우가 남의 온톨로지(데이터 통합 플랫폼)에 흡수되는 순간, 종속이 시작된다. 기회론은 이렇게 답합니다 — 제조업이 생산해 내는 제조 Data는 AI 시대의 최대 자산이고, 우리에게는 그들이 갖지 못한 세계 최고의 제조 현장 데이터가 있다.
저는 기회론의 편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결국 그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서방의 우방국 생산기반이라는 출발선은 유리하지만, 팔리는 것은 셀 원산지부터 조립 공정까지 이어지는 추적 가능한 데이터, 제3자가 검증한 인증, 그리고 이것을 함축한 브랜드입니다. 최종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CTNS가 가야 할 길
"핵심은 추적 가능한 품질 기록이다."
그래서 씨티엔에스(CTNS)는 세 가지 원칙으로 이 시대에 대응해야 겠습니다. 규제를 장애물이 아니라 시장 규칙으로 인식한다. 신뢰를 데이터·기록·인증으로 증명 가능한 형태로 제품화한다. 제품이 아니라 역량(AI, AX 기반 배터리팩 유연 제조 플랫폼)을 판다.
기술 권력이 세상을 좌우하는 시대에서 기술은 중립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술의 힘이 커질수록 요구되는 것은 더 화려한 스펙이 아니라 더 엄격한 증명이고, 그것은 처음부터 안전과 신뢰성을 사업의 중심에 둔 회사에게 유리한 시장이 될 것입니다.
AI 기술 제국들의 속국이 되지 않을, 당신의 돌파구는 무엇일까요?
인용·출처
- 알렉스 C. 카프·니콜라스 자미스카, 『기술공화국 선언』, 지식노마드(2025)
- 팔란티어 22개조 선언, X(2026-04-19)
- Re:Build Manufacturing NDAA 준수 드론 배터리 라인 보도자료, Business Wire(2026-07-14) · Ultralife Corporation 2025 4Q 실적(investor.ultralifecorporation.com)
- KAIST EMBA BOOK 독서모임 발제·토론(2026-07-23, 발제 권기정)